12월 3일 22시 27분 부터 12월 4일 04시 30분 사이에 나라가 두번이나 뒤집혔는데, 나는 3일 밤 21시 부터 잠을 잤다. 그날의 핸드폰 수면기록을 보면 22시 16분부터 04시 53분까지 잠이 든 상태로 나온다.
덕분에 새벽 5시에 일어나 핸드폰에 지인들이 보내온 카톡 중 처음 본 기사는 "계엄 해제" 였다. "??? 계엄이 있었다고?" 가짜뉴스인 줄 알았는데, 카톡을 더 올려보니 "비상계엄 발표" 라는 기사도 있어서 "무엇인가 있긴 있구나" 하며 나라보다는 회사 출근걱정이 앞서 새벽같이 출근을 했다.
출근해서 기사를 훑어보니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했다가 국회가 새벽 1시에 해제를 결의하고 최종 해제되는 과정이 시간상 순식간인지라 큰일은 아닌가 보다 하며 안일하게 생각을 했는데, 윤석열의 탄핵심판 변론에서, 각종 언론에서, 국회 국정조사에서 나오는 상황들을 보니 이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지 않았다는게 오히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죽는 줄 알고 밤새 떨었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은 잡히면 고문당하고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국회로 달렸다.
시민들은 총을 든 군인 뒤에서 가방을 잡고 진입하지 못하게 막았다.
국회 보좌관들은 국회안에 바리케이트를 쌓고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았다.
한 한 청년은 장갑차에 깔릴 위험을 무릅쓰고 맨몸으로 장갑차 앞을 막아섰다.
그그 모습을 본 시민들은 그 청년 옆을 함께 지켰다.
한 변호사는 군대에 있는 아들이 계엄군이 될까 걱정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국회에 있던 시민들은 추운 겨울 밤새 국회를 둘러쌓고 지켰다.
그날 국회까지 갈 수 없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밤새 국회 중계를 보며 해제 되기만을 바랬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잠을 자고 난 후에 알았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다고만 생각했던게, 그날의 여러 사람들의 상황을 알게 되면서.. 알면 알수록 "나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또한 할 수 있는게 없다면 가족들을 걱정하며 밤새 떨었을 것이다.
내가 국회의원이였다면 국회를 향해 가는 선택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국회에 있었다면 군인 앞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국회 보좌관이라면 국회의원 옆에 붙어서 몸을 사렸을 것이다.
내가 국회로 가려는 장갑차를 보았다면 한발 뒤로 물러섰을 것이다.
내가 장갑차 앞의 청년을 보았다면 장갑차에 깔릴까 청년을 빼 내었을 것이다.
내가 국회앞에 있었더라면 해제 결의안 통과와 함께 귀가했을 것이다.
내가 국회에 갈 수 없었다면.... 국회 중계만 봤겠지...
현장에 있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기 전에 과연 몸이 먼저 움직였을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계엄 준비와 체포, 암살등의 사실과 증언들을 들으면서 알고는 절대 못했을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을 전혀 모른체 잠만 잤던 나는 참 다행이였다.